일상

촛불을 켜는 자와 촛불을 끄는 자

undercurrent 2008. 5. 31. 02:20

 며칠째 밤마다 전경들과 시민들이 대치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어김 없이 전경들이 바리케이트를 쳐 사방이 꽉 막혀있다. 어제는 교보빌딩 앞 도로까지 전경차량으로 완전히 막아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다행히 바리케이트 뒤쪽은 비교적 통행이 자유로웠다.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아직 거리행진 중이어서 광화문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물론 검은 제복을 입은 전경들이 일대에 잔득 배치돼 있어 나름대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바리케이트 뒤쪽은 더이상 차도가 아니었다. 차는 없었고 나를 포함해 도로를 지나는 사람 몇몇이 있을 뿐이었다. 광화문 도로 한 복판을 걸어서 건너긴 처음이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기념사진을 찍는 연인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렇게 낭만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긴 닭장차의 행렬을 보고 있자면  영화 화려한 휴가의 금남로 세트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맞은 편 인도에서도 전경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시선을 어느 곳으로 돌려도 그들은 시야에 들어왔다.  한 손엔 곤봉을 또 다른 한 손엔 방패를 들고 대열을 이루고 서있는 그 모습은 꼭 저승사자  무리 같았다. 

 

 전경들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드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그들을 지휘하는 권력자들이다. 전경이란 게 원래 정권의 수족과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 영혼은 잠시 유배된다.  

 

 소수의 잘못이 다수의 불행을 가져온다. 싸움은 싸움을 부르고, 미움은 미움을 부른다. 소수의 어떤 사람들 때문에 공연을 보러 가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해야 할 사람들이 거리행진을 해야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곤봉과 방패를 들어야 하는 현실이 그저 갑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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