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에 맞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간단히 맞을 수 있는 비는 아니었다. 하늘에서 물대포를 쏘는 것처럼 엄청난 물줄기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비 사이로 간간히 천둥소리도 들렸다.
나는 비를 피해 잠시 처마 밑에 몸을 숨긴 옛날 선비처럼 건물 입구에 서서 유리문 밖만 내다보았다. 지갑 속엔 달랑 천원 짜리 한 장밖에 없었다. 때문에 우산을 살 수도 없었다. 또 우산이 있다손 치더라도 옷을 금방 다 젖게 만들 그런 빗줄기였다.
일기예보를 들은 사람이라면 알고 있었겠지만 내게는 예정에 없는 비였다. 예정에 없었으므로 우산을 챙겨오지도 않았다. 또 하필 이런 날 예정에 없이 회사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퇴근시간이 늦어지게 되었다.(업무처리 속도가 듀얼 코어처럼 빠르고 칼퇴근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그런 일이 일 년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다.) 예정대로 퇴근했다면 비를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다.
느닷없는 비는 지금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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