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위대한 개똥

undercurrent 2008. 1. 14. 01:19
 발밑에서 뭔가 물컹한 것이 밟히는 게 느껴졌다. 순간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시선을 아래 쪽으로 내렸더니 동그랑땡 모양으로 눌려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설마가 사실로부터 확인사살되는 순간이었다. 다다다다. 아악. 하지만 다행인 것은 추운 날씨와 건조한 공기 덕분에 개똥은 카라멜처럼 단단하게 굳어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내 구두 밑바닥은 개똥으로부터 안전했고 나는 더이상 똥밟은 표정을 짓는 수고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 하란 말이냐, 이 찜찜한 기분은. 그래서 신발을 여러 번 바닥에 문질러야만 했다. 흙에도 문질러 보고 '어서 오십시오'라는 문구가 선명한 상점 앞 카페트에도 문질렀다. 그제서야 찜찜한 기분을 조금 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찜찜한 기분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조금 남아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굴 탓하겠는가. 원인을 제공한 개를 탓할 수도 없고 당사자인 개똥을 탓할 수도 없다. (길에 멈춰서서 개똥을 나무라는 한 남자를 한번 상상해 보라.;;)

 

 개똥. 개+똥. 개. 똥. 나는 지금 개똥을 생각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것처럼 내가 그를 밟아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개똥이 되었다. 정말 그랬다. 내가 개똥을 밟기 전까지 나는 개똥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개똥을 밟은 후부터는 내 머리속의 한 구석을 개똥이란 놈이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개똥에 관한 글까지 쓰지 않고 있는가. 이건 좀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내가 밟은 개똥의 존재는 그 개똥을 태어나게 한 개조차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온 우주를 통털어 그 개똥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건 나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를 인식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 두 개념간의 상호교환 없이는 어떠한 존재도 증명될 수 없는 것일까. 어쨌든 그 개똥은 내 발에 밟힘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셈이고 나는 그 개똥을 밟음으로 인해 개똥의 존재를 인식했다. 그런 점에서 그 개똥은 다른 어느 개똥보다 위대하다. 그 개똥의 존재를 통해 비로소 (그 망할 놈의)개를 인식하게 됐으므로 그 개똥은 그 개보다도 위대하다.

 

 개똥은 위대하지만 나는 여전히 찜찜하다. 신발장 안에서 잠자고 있을 내 구두도 그럴 것이다. 위대한 개똥을 밟았으니 당연히 나와 내 구두는 더 위대해야 맞는 건데 말이다.

 

 일요일 오후, 나와 내 머리속에 든 개똥이 방안에 함께 있다. 방안 가득 퍼지는 개똥의 향기...우웩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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