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과연 서른 살을 희망이 있는 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른 살. 서른 살이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 같고,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없는 것 같은 나이. 딱 그만큼의 나이. 그보다 넘치지도 않고, 그보다 미치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 어쩌다 보니 그 나이가 되어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희망에 관해 생각하다. 머리 속이 미묘하다. 가슴은 텅 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전철 안에 있다. 아침에는 버스 안에서 눈은 감고 귀는 열고 졸고 있었는데, 어느새 저녁이 되어 피곤해진 토끼눈을 하고 저녁의 전철 안에 있다. 나는 슬픈 표정으로-어디까지나 내 느낌으로- 전철 안을 천천히 둘러본다. 고독한 사람들이 고독하게 앉아있거나 서있는 살풍경한 풍경이 내 망막속에 비친다. 망막은 언제나 진실만을 보여주는 것일까. 반은 진실, 반은 거짓일까. 어쨌든 나는 망막을 믿지 않는다. 주인은 하인을 믿지 않는 법이다. 나는 망막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망막. 내가 어쩌지도 못하는 내 몸속의 하수인. 그때, 고막이 내 뺨에 몸을 비빈다. 그것은 강아지를 귀여워하는 주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교를 떠는 고양이의 모습과 비슷하다. 고막이 망막을 질투하고 나선 것이다. 고막은 내게 핑크플로이드의 ‘타임’을 들려주며 나의 관심을 끌려 한다. 이럴땐 고막이 ‘돌아온 탕자’처럼 느껴진다. 망막은 잠시 유다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망막 역시 언제든 돌아온 탕자로 바뀔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망막도 고막도 서른 살의 희망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자신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갖다 놓은 나를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이해될 수도 없을 것이다. 서른 살이란 바로 그런 나이다. 그보다 넘치지도 않고, 그보다 미치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험지역에서의 태클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0) | 2006.02.25 |
---|---|
신기한 일 (0) | 2006.02.15 |
안전제일 인생 (0) | 2006.02.06 |
I'm not OK (0) | 2005.04.10 |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44) - 시인 김혜순] (0) | 2005.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