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럭을 따라 걷고 있었다. 내가 내딛는 걸음 걸음에 나는 '산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보도블럭을 따라 산책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내 앞으로 아름다운 여인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여인을 무작정 뒤따라갔다. 그 여인을 놓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전에도 아무 여인이나 몇 걸음 뒤쫓아 간 적은 있지만 끝까지 뒤쫓아 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다르다. 나는 끝까지 저 여인을 뒤쫓으리라 다짐했다.
여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면 나도 횡단보도를 건넜고 여인이 건물 모퉁이를 돌면 나도 따라 건물 모퉁이를 돌았다.
마침내 여인이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은 어느 건물 옥상이었다. 여인은 갑자기 홱 뒤돌아보았다.
"왜 날 따라오는 거죠? 당장 사라져주세요. 안 그럼 소릴 지르겠어요."
"소리질러 봤자 소용 없어요. 어차피 이건 내 꿈이라 아무도 당신을 돕진 않을 거요."
"날 어떻게 하려는 건가요?"
"그건 나도 알 수 없소. 다만 내 꿈이 날 명령할 뿐이오."
"분명 후회할 거라고 해도요?"
"그렇소."
나는 여인을 내 품에 끌어안았다. 여인은 몇 번 몸부림쳤지만 내 힘을 감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내 자포자기했다. 나는 여인의 입에 거칠게 키스했다. 그리고 그녀의 옷을 벗겼다. 그러자 여인은 등에 커다란 날개를 단 한 마리 하얀나비로 변해버렸다. 머리에는 어느샌가 커다란 더듬이가 나 있었다. 한 번의 날개짓으로 여인은 단번에 내 머리 위로 떠올랐다. 하하하하. 하하하. 하하. 여인의 비웃음 소리가 공기중에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