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눈먼 자들의 도시'에 다녀왔습니다. 그 도시엔 톨게이트도 이정표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어느 지점에선가 문득 눈을 뜨니 그곳이 바로 눈먼 자들의 도시였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안에서 비로소 눈을 뜨다니요.
저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제 안에 숨겨진 잔혹함과 더러움, 추함뿐만 아니라 제 안에 숨겨지지 않은 잔혹함과 더러움과 추함까지 느껴야 했습니다. 그것을 기어이 보고야 말았습니다.
사라마구 씨가 저를 그 처절한 현장으로 안내했습니다. 저는 사마라구 씨 바로 뒤에 바짝 붙어서서 때로는 두려움과 때로는 분노로 그 현장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이 싫어지기도 했고 미워지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론 사람들이 무척 불쌍해서 도와주고도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했습니다. 의사의 아내를 사랑했고, 눈물을 핥아주는 개를 사랑했고 결국엔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지금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한참을 떠나와 있습니다. 여기 도시엔 시체 썩는 냄새나 배설물 냄가 나지 않습니다. 음식물을 찾으러 더듬거리며 거리를 기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호등의 불빛에 따라 차와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고 저녁이 되면 가로등엔 하나 둘씩 불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눈먼 자들의 도시'가 그랬듯 이 도시도 볼 순 있지만 보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것 같습니다. 의사의 아내가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