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나는 전화를 끊었다

undercurrent 2005. 6. 16. 00:20

 회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전철 안. 나는 내 오른쪽 바지주머니에서 미세한 떨림을 감지했다. 그것은 마치 휴대전화의 진동음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내 내 손을 바지주머니에 가져갔고 그제서야 그것이 정말 휴대전화의 진동음임을 알 수 있었다. 발신자번호는 찍혀있지 않았다. 

 나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휴대전화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그러자 전화기 저편에서도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전화기 저편에 대고 "누구세요?"라고 묻기도 전에  이미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오다니! 

 전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그러니까 나는 나에게 잘 지내느냐고 물었다. 나는 너도 알다시피 그럭저럭 지낸다고 대답했다. 그가 아니, 전화기 저편의 목소리가 그러니까 내가 다시 "요즘어때?"라고 물었을 때는 네가 나인데 그런 질문이 어딨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랬더니 그가 아니, 내가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럴 필요는 없고 용건이나 어서 말하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아니, 나는 웃었다. 그랬다. 그는(나는) 용건도 없으면서 전화를 건 것이었다. 어쩜 그렇게 나하고 하는 짓이 똑같냐. 그리고나서 나는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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