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천만예요

undercurrent 2005. 10. 20. 22:04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 아가씨가 어서오라며 나를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 자리를 안내했다. 나는 미용실 아가씨가 안내한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어떤 스타일의 머리를 원하세요? 분무기의 물을 뿌리며 미용실 아가씨가 내게 물었다. 바보같이요. 네? 미용실 아가씨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바. 보. 같. 이. 요. 나는 미용실 아가씨가 더이상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다시 발음했다. 미용실 아가씨는 그제서야 가위질을 하기 시작했다. 삭둑삭둑 사삭사삭. 미용실 아가씨의 손길이 닿자 내 머리카락은 조금씩 잘려나갔다. 머리 손질이 다 끝나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미용실 아가씨가 내게 물었다. 어때요? 바보같죠?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뇨. 하나도 바보 같지 않아요. 그러자 미용실 아가씨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눈에 잠시 고춧가루가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리는 없었다.) 죄송해요. 아무리 바보같이 머리손질을 하려해도 당신이 워낙 바보같지 않아서 저의 미천한 실력으로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네요. 미용실 아가씨는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런 미용실 아가씨를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조금은 슬퍼졌다. 이런 상황에 닥치면 누구나 으레 그러듯 나는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리고 미용실 아가씨에게 다정스레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 탓이 아니에요. 전혀 바보같지 않게 태어난 제 잘못이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미용실 아가씨는 그제서야 안심이 된듯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고마워요. 당신은 정말 천사의 마음씨를 가졌군요. 천만예요. 나는 미용실 아가씨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