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지하철을 타다

undercurrent 2005. 8. 5. 01:18

 퇴근길이었다. 지하철을 탔다. 여느때처럼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그때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지하철을 탈 때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 중의 하나였다. 그런 일에는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지만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결국 관여하게 되고 마는 기분 나쁜 일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렸을 때 대학생 쯤으로 보이는 어떤 남자 녀석이 토하고 있었다. 친구로 보이는 녀석이 등을 토닥거렸다. 그때 어떤 아저씨로 보이는 아저씨가 소리쳤다. 아저씨로 보이는 아저씨 바지에는 이미 피자 반죽같은 토사물이 묻어있었다. 아저씨가 또 소리쳤다. 욕이 섞여 있었다. 친구의 등을 토닥 거리던 남자녀석이 잘 못했다고 빌었다. 아저씨가 다시 욕을 퍼부었다. 잘못했다고 빌던 녀석의 얼굴이 빨개졌다. 녀석은 태도를 바꾸어 아저씨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욕을 퍼부었다. 이에 몇몇 아저씨들이 합세했다. 싸움은 커졌다. 주먹과 욕설이 날아다녔고 멱살이 난무했다. 난장판이었다. 여기가 현실인지 지옥인지 혼동됐다. 

 그리고 나는 갈등했다. 이 싸움에 뛰어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원래 나라는 녀석은 모든 일에 무관심하다. 도대체가 이런 말도 안되는 싸움에 열정을 가질만큼 삶에 대한 의욕도 없다. 그래도 나는 갈등한다. 일단은 이런 소란스러움을 막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엔 어린 학생들도 있었고 여자들들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의 등을 토닥거리던 녀석을 향해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갖다댐으로써 조용히 하라는 뜻을 전한다. 예상대로 나에게 심한 욕설이 쏟아진다. 이윽고 나는 그 싸움에 뛰어들게 될 명분을 찾는다. 상대를 굴복시키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인다. 나는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고 아무말없이 주먹을 날린다. 여기저기서 여자들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진다. 내 주먹에 맞은 녀석이 코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의 피가 전철 바닥에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졌다. 순간 두 눈이 불길에 휩싸인 녀석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재빨리 천정에 달린 손잡이를 이용해 몸을 띄워 다가오는 녀석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발로 후려찼다. 녀석이 뒤로 나자빠졌다. 그걸로 나는 그 싸움을 끝내려 했다. 하지만 녀석은 그럴 생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의자 밑에 있던 소화기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던졌다. 나는 날아오는 소화기를 피할 순 없었다. 만약 내가 피하거나 그것을 다른 곳으로 차버린다면 누군가는 소화기에 맞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소화기에 맞았다. 소화기의 손잡이가 내 팔뚝을 스치면서 상처를 냈다. 주위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경찰에 전화하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난 전철문이 열리자 이 모든 소음과 싸움을 멀리하고 전철에서 내려버렸다. 팔에선 계속 피가 흘렀다.

 

 나는 지금 상처난 팔을 움켜쥔 채 방안에서 혼자 끙끙거리고 있다. 상처는 쓰라리고 아프다. 내 몸이 아프듯이 녀석도 지금 아픔을 느끼고 있을까. 그랬다면 미안하다.